마음속에 일어나는 선악의 인식(선악의 법칙)

우리가 육신을 입고 사는 이 세상은 육신의 세계, 선악의 세계입니다. 인간의 마음 속에는 선과 악을 아는 감각이나 지각이 있는데, 성경은 선과 악을 아는 지각을 자아라고 부릅니다. 선악을 아는 감각이 마음과 합일되면 선악을 아는 감각에 의해 자아가 생성됩니다. 죽은 몸은 욕을 해도 깨닫지 못하고, 칼로 찔러도 감각이 없기 때문에 감각이 없습니다. 칼에 찔렸을 때 통증을 느끼는 것은 선악의 감각이다. 몸의 고통은 마음이다. 에 그것은 악으로 인식됩니다. 몸 안에는 마음(영혼)이 있기 때문에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내부에 있으면 연결되고, 외부에 있으면 연결되지 않습니다.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마음과 그리스도가 연결되고, 그리스도가 마음 밖에 있으면 마음과 그리스도가 분리됩니다. 성경에서 죽음은 분리이고 삶은 연합입니다. 죄에 대하여 마음(죄의 몸)이 죽은 이유는 마음이 죄와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죄와 연결되지 않는 이유는 죄가 몸 밖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 선과 악에 대한 인식은 멈추지 않고 계속됩니다. 육체적 자아는 행동을 통해 나타난다. 선악의 지각은 자아가 있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선악의 지각이 마음 속에서 작용할 때 자아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계시는 선악에 대한 지각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여자의 벌거벗은 몸 이것이 어떻게 내 마음에 정욕을 불러일으키는가? 칼은 어떻게 내 마음에 피를 불러일으키는가? 이 진리를 깨달으면 모든 진리가 다 이루어집니다. 여자의 벌거벗은 몸을 보면 음욕이 생기고, 마음에 선악에 대한 인식이 생기고, 여자에 대한 선악을 알게 됩니다. 마음이 반응하기 때문이죠. 마음이 여자에게 반응하면 그 마음은 음욕을 품은 마음이 됩니다. 여기서 마음은 그릇이고, 정욕은 마음의 주인이 됩니다. 당신이 마음속에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당신이 품고 있는 것이 당신 마음의 주인입니다. 다음 욕망은 당신의 마음 속에 있습니다. 마음이 가득 차면 정욕 외에는 아무것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 상태는 음욕이 지배하는 마음이며, 이 상태에서 강간이나 간음이 일어난다. 탐욕도 마찬가지다. 탐욕은 부(富)에 반응하고 부(돈)에 반응하는 마음이다. 성경에는 돼지로 계시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선악에 대한 인식이 재물과 만나 반응하면 마음속에 탐욕이 생기게 됩니다. 탐욕스러운 마음은 가난하고 공허한 마음이 아니라 탐욕이 지배하는 마음입니다. 욕심과 마음이 만날 때 일어납니다. 자아라는 것이 있습니다. 마음이 돈을 만나 반응하면 돈을 사랑하는 자아가 나타난다. 성경에서는 마음을 집이나 성전으로 계시합니다. 어린 양의 피가 이스라엘 집의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면, 죽음의 사자가 그 피를 보고 지나갈 것입니다. 사망이 가서 예수의 피를 본 것이 유월절이니라. 십자가 이후에는 신자의 마음이 이스라엘 집인데, 문설주와 인방에 예수님의 피가 묻어 있으면 그 피를 보면 심판이 내려집니다. 예수님의 피가 마음에 들어가기 때문에 죽음이 마음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보호해주기 때문이죠. 예수님의 피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마음에 보호막을 쳐서 율법이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이것이 새 마음이다. 여기서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마음이 하나인가 둘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구원이든, 성화이든, 영화롭게 되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마음은 하나이고 주인은 둘인가? 두 개의 마음과 두 개의 주인이 있습니까? 이 주제는 성경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놀랍게도 마음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두 명의 주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두 마음에는 두 주인이 있습니다. 현상과 본질은 왜 다른가? 그것은 우리가 육신을 입고 살기 때문입니다. 짐승의 마음과 그리스도의 마음을 한 마음에 두 주인으로 풀면 인간의 마음이 짐승의 마음이고 그리스도의 마음이 주인이면 그리스도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외부적인 현상만 보면 성경은 이렇게 해결한다. 그러나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마음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짐승이 주인이 되면 그 마음은 구원과 그리스도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 문제 때문에 하나님은 십자가를 경계로 삼아 십자가의 이쪽과 저쪽을 영원히 갈라놓으셨습니다. 십자가 이쪽에는 옛 마음, 곧 옛 성전이 있고, 십자가의 죽음 저편에는 새 성전, 곧 새 성전이 있습니다. 마음이 있습니다. 육으로 난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이유는 십자가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여자의 벌거벗은 몸으로 돌아가 보자. 음녀가 아들을 유혹하려고 벌거벗고 춤을 춘다 할지라도 아들의 마음이 음녀에게 호응하지 않으면 음녀에게서 태어난 모든 것이 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녀는 음녀에게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마음이 음녀에게 반응하면 음녀에게서 태어난 모든 것이 아들에게로 들어갑니다. 너와 나의 관계에서 너를 음녀라 부르자. 당신이 유혹을 받는 이유는 당신 안에 선악에 대한 인식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선과 악에 대한 인식이 당신 안에서 작용하는 것처럼, 선과 악에 대한 인식도 당신 안에서 작용하게 하십시오. 아담에게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도록 유혹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전적으로 당신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당신의 문제를 내 마음에 가져오는 순간 내 마음은 지옥이 됩니다. 당신의 말이 내 마음에 들어오면 당신의 말로 내 마음은 지옥이 됩니다. 왜냐하면 내 마음 속의 선과 악에 대한 인식이 당신의 말에 반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마음 밖에서 일어나는 선과 악을 마음속에 들여오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 밖에 있는 것은 우리를 죽일 수 없습니다. 오직 마음 속에 있는 것만이 마음을 죽인다. 내 마음에 죄가 있다면 죄는 마음을 죽일 수 없습니다. 옛 성전인 몸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육신으로는 정과 욕심(욕심)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습니다. 선과 악에 대한 인식이 죽었습니다. 이제 선과 악에 대한 인식이 우리 마음 속에 있습니다. 이것은 죽었기 때문에 마음 밖의 선이나 악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죄에 대하여 죽은 것입니다. 죽은 사람은 죄에서 벗어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갑니다.